의창
평시에 곡식을 저장해두었다가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백성을 구호하거나
가난한 백성에게
빌려주던 구
호기관.
고려 태조 때 흑창을 설치한 것에
서 비롯되었으며 986년(성종5)
에 의창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방까지 확대했습니다.
이후 몽골의 침입 등
혼란을 겪으면서
폐지되었다
가 1389
년(창왕1)
에 다시
설치
되
어
조선으로 이어졌습니다.
본래 의창에서는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무
이자로 빌려주
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초에 흉년이 자주 들어 구호를 거듭
하게 되면서 의창의 곡식이 부족
하게 되자 그 부족분을 국
방을 위해 예비해 놓
은 군자곡으로 보충했습니다.
그래서 1423년(세종5)에 의창곡과
군자곡을 엄격히 분리하여 의
창의 원곡수를 정하고 이를
유지하고자 의창곡 1석
마다 3승의 이자를
받도록 했으며
그러나 이후
에도 원곡
수를 유
지하기 어려워 1459년(세조5)에 이
자를 3두로 올리면서 본래 목
적과 달리 고리대 등의 폐
단을 낳게 되었으며 그
뒤 1525년(중종20)에
진휼청을 설치하여
구호업무를 통합
하면서 폐지되었습니다.
웅진대백과사전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