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글 과 성공사례

강남탈모-국자감

윤스탈모 2020. 4. 6. 00:00
 

 

출처 ㅡ 웅진대백과사전 

 

국자감

 

고려시대의 국립대학.

 

992년(성종11)에 당 송의 제도를 참고해 개경에 설치했습니다.

 

유교 경천을 공부하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기술학을 공부하

는 율학 서학 산학을 두었

습니다.

 




 


 

 

 

 

국자학에는 3품 이상 관료의 아들과 손자 태학에는 5품 이상 관료의 아들과

손자 사문학에는 7품 이상 관료의 아들 등이

 

입학할 수 있었으며 입학 자격은 달랐지만 국자학 태학 사문학에서는 같은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논어)와 (효경)을 공부한 후 (주역) (상서) (주례) (예기) (의례) (시경) (좌전)

(곡량전) (공양전)의 9경을 공부하고 이후

(국어)와 

 

(설문) (자림) (삼창) (이아) 등을 읽었습니다.

 

한편 기술학부인 율학과 서학 산학에는 8품 이하의 관원과 일반 백성의 아

들이 입학할 수 있었으며 7품 이상 관원의 아들도

 

원하면 입학할 수 있었으며 율학에서는 법률을 서학에서는 8서를 산학에

서는 산술을 가르쳤습니다.

 

관원으로는 총장격인 대사성을 비롯해 좨주 사업 승 등이 있었습니다.

 

교원으로는 국자학과 태학 사문학에는 각기 박사와 학정 학록 학유

직학 등을 두었고 율학 서학 산학에는 박사만을

두었습니다.

 

 

학생의 정원은 국자학과 태학 사문학의 경우 각각 30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고

추정합니다.

 

율학 서학 산학은 10여 명이었던 것으로 봅니다.

 

국자감의 학생들은 과거를 볼 때 지방에서 치르는 예비시험을 면제

받았고 곧바로 국자감에서 실시하는 과거의

예비시험인 

 

 

국자감시를 거쳐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평소의 수학성적에 따라

국자감시를 면제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국자감의 운영은 국가에서 받은 토지를 기반으로 했으나 이후 재정이

어려워져 교육이 부실해

졌습니다.

 

 

 

 

 







 

 

그래서 예종 때에는 장학재단인 양현고를 설치해 경비를 충당했고

충렬왕 때는 안향의 건의로 섬학전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충렬왕 때 원의 간섭으로 관제를 개편하면서 국자감을 국학으로

고쳤고 충선왕 때 성균관으로 고쳤다가 1356년(공민왕5)에 

반워정책으로 다시 국자감으로 고쳤습니다.

 

 

1362년에는 성균관으로 고쳐 조선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려 말과 조선의 성균관에서는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를 폐지했으며 그 대신 해당 관청에서 기술

학을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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